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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0 아브라함의 복, 영생의 복, 천당 영주권의 복
cleven 3468 2021-01-10 02:12:44
 
 

210110

아브라함의 복, 영생의 복, 천당 영주권의 복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마1:1-2).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나오는 시조다. 아브라함은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고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된다.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롬4:17).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창22:18). 아브라함의 마지막 씨가 예수님이라면 첫 씨는 이삭이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제삼 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창22:1-4).

어린 아들 이삭은 아침 일찍 일어나 늙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함께 사흘 길을 걸었다.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려 간다는데 뭔가 이상하다. 번제할 양이 없는 것이다. 여하튼 이삭은 아브라함만 믿고 계속 따라갔다.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창22:5-7).

모리아 땅의 한 산에 당도하자 아브라함은 종들을 뒤에 남겨두면서 말했다.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마음에 간직한 희망 사항이 아니라 공개적인 선언이다. 그러나 번제에 쓸 나무도 있고 불과 칼도 있는데 양이 없다.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창22:8-11).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아브라함이 담담하게 자신했지만 이삭은 왠지 불안하다. 제단도 쌓고 나무도 벌여 놓았는데 아직 양이 없다. 그 순간 늙은 아버지가 완력으로 어린 아들을 결박하고서 칼로 내려치려는 게 아닌가. 아브라함의 손에 높이 들린 칼을 본 이삭의 심장은 한순간 정지됐을 것이다.

사이코패스가 아닐진대 아브라함의 심장은 어땠을까. 무감정 상태가 아니라 감정이 요동치는 중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선택하는 용기가 곧 믿음이지 않는가.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창21:12). 이삭을 번제로 바쳐야 하는 과정에서 아브라함은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었을 것이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창22:12-14).

늙은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고 칼로 잡으려는 찰나 천사의 다급한 제지가 있었고 이삭은 아마 심정지 상태에서 깨어났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제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피니 수풀에 뿔이 걸린 숫양이 보였다. 그 숫양을 잡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린 후 아버지와 아들은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다. 충격이 너무 크면 실어증에 걸린다. 이삭은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 말도 못한 채 사흘 길을 되돌아갔을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기피증이 생겼을 수도 있다.

늙은 아버지는 자기 신앙심으로 그 충격을 감내할 만했다고 해도 어린 아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합작 이벤트에 이삭이 무기력하게 당한 셈이었다. 하나님은 크고 영원한 상급이 달린 시험 문제를 출제하셨고 아브라함은 그 시험 문제를 풀어야 하는 수험생이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당할 충격의 크기를 헤아리긴 했겠지만 잠깐의 고통 후에 크고 영원한 상급이 오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당할 충격의 크기를 헤아리긴 했겠지만 잠깐의 고통 후에 크고 영원한 상급이 오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십자가를 지신 이후에 예수님이 한없이 높아지신 것처럼 말이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빌2:8-9).

심신의 원기를 회복한 후 이삭은 종종 그 번제 사건의 전후를 복기하곤 했을 것이다. 기억의 저항이 컸겠으나 기억할수록 모든 게 하나님의 마스터플랜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진짜다. 하나님이 직접 숫양을 준비하셨다.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맞다. 온전한 번제를 드렸고 살아서 귀가할 수 있었다.

아브라함이 제주였다면 이삭은 제물이었다. 제주는 죽지 않아도 되지만 제물은 죽어야 하는 운명이다. 그러니까 이삭의 신앙 체험이 아브라함의 그것보다 더 극적이었다. 또한 이삭의 신앙 이력이 아브라함의 그것보다 더 압축적이었다. 아브라함이 수십 년에 걸쳐 쌓은 신앙 이력을 이삭은 짧은 기간에 자기 것으로 흡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수험생 아브라함과 함께 이삭도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했다고 볼 수 있다.

이삭은 더 이상 하나님의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될 만큼 신앙의 압축 성장을 한 셈이었다. 성년이 되고 일가를 이룬 후 이삭은 극적으로, 또 압축적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창26:12-13). 그 해 이삭은 100배의 결실을 거둘 수 있었고 점점 번창해서 마침내 거부가 됐다.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창26:14-16). 이삭이 번창하자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했고 이삭은 거기서 떠나야 했다.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창26:17-18). 이삭은 싸우지 않고 떠났고 블레셋 사람들이 메워버린 우물들을 또 팠다.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창26:19-21). 이삭이 우물을 파기만 하면 소유권 분쟁이 생겼다.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창26:22). 이삭이 또 옮겨서 우물을 팠는데 거기서는 소유권 분쟁이 없었다. 이제부터 이 넓은 곳에서 우리가 번성할 것이라며 이삭은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이삭은 쫓기는 중에도 늘 자신감과 여유가 있었다. 그 번제 사건 이후 이삭은 하나님이 미리 다 준비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창22:14). 이런 확신으로 사는 사람은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매몰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이것이 아니어도 하나님이 또 예비하시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삭은 그 번제 사건의 절정이었던 신탁도 붙잡고 살았을 것이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창22:18). 신탁 곧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사는 사람은 천하무적이다. 그런데 나는 매주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또 듣지 않는가.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창26:23-25).

이삭이 익숙한 곳을 떠나 낮선 브엘세바로 이동하자 하나님이 직접 약속의 말씀을 주신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이삭은 이 말씀을 붙잡고 살면서 또 열심히 우물을 팠다. 내가 매주일 예배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믿으며 내 일을 열심히 계속하면 하나님은 약속대로 내게 복을 주시는 것이다.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이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알리어 이르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창26:32-33).

이삭은 일곱 번째 우물 곧 브엘세바를 얻었고 그 곳이 성읍으로 확장될 때까지 번성하고 또 번성했다. 이삭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자기 일을 반복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너무 하나에 매몰돼 있지는 않고 양보하고 물러설 줄도 알았다. 하나님이 약속대로 함께하시고 복을 주시니 결국 잘될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탁 곧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사는 사람은 내쫓기는 중에도 늘 자신감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1-32).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오히려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벌받을 일을 생각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증거입니다"(요일4:18).

나를 위해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주실 정도로 하나님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 아버지는 곧 사랑이시다. 나는 하나님 아버지의 이런 사랑을 알고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을 내가 완전히 알고 믿으면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다.

"너는 복이 될지라"(창12:2).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창22:18). 아브라함의 최종적인 씨, 곧 예수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은 내 복이 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3:9).

하나님 아버지는 매주일 나를 예배 가운데로 부르신다. 약속의 말씀을 다져서 떠먹이시고 하나님 아들 예수님 안에서 다양한 복을 주신다. 내가 예수님을 믿어서 얻게 되는, 최상의 복은 아브라함의 복과 영생의 복과 천당 영주권의 복이다. 이런 복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자. 이런 복을 내 이웃에게도 전하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1:16).

가족과 일가친지, 그리고 지인에게 일신이 잘되는 복만 빌어주지 말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안에 있는 아브라함의 복과 영생의 복과 천당 영주권의 복을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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