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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배기처럼 서로 연결된 미래
cleven 120 2021-07-17 21:13:36
 
 

210711

꽈배기처럼 서로 연결된 미래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왕상19:13-14).

엘리야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다 죽임을 당했고 자신만 홀로 남았는데 자신도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며 하소연한다. 엘리야의 입장에서는 맞다. 엘리야가 죽은 사람을 살리고 하늘에서 불을 내리고 또 비를 내렸지만 적대적인 상황은 그대로다. 아합 왕실이 엘리야를 추격해 죽이려고 한다. 엘리야는 광야로 물러났다가 다시 40일을 도망쳐 지금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중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엘리야가 틀렸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왕상19:15-16). 하나님은 대전환의 새 판을 짜신다. 아람의 왕, 이스라엘의 왕, 그리고 하나님의 선지자를 다 바꾸신다. 엘리야가 보지 못한 큰 그림이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19:18). 엘리야가 오직 자신만 남았다며 칭얼거리지만 하나님은 7,000명을 남기겠다고 약속하신다. 엘리야일지라도 자신의 입장에 빠져서 다른 가능성, 특히 하나님의 가능성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있는 것에서 답을 찾다가 좌절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직 없는 것에서 답을 주신다.

'오래 전에 여호와께서 바다를 갈라 소용돌이치는 물결 사이에 곧장 길을 내시고 이집트의 막강한 군대와 그 모든 전차와 말을 바다 속으로 끌어들여 송두리째 엎어 버리고 그들을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하여 등불을 끄듯이 그들을 완전히 소멸하셨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지나간 일은 잊어버리고 생각하지 말아라. 보라! 내가 새로운 일을 행하겠다. 이미 그 일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너희는 보지 못하느냐? 내가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물이 흐르게 할 것이다''(사43:16-19).

430년간의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출애굽 기적에 이스라엘 백성의 기억이 대대로 매달려 있다. 무엇을 구하든지, 무엇을 생각하든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출애굽 기적이 표준이고 모범이다. 그것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 지나간 일일 뿐이니 잊어버리라고 말씀하신다. 이번에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어서 이스라엘 백성의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을 끝내시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절망이어도 하나님은 이전과 전혀 다른 차원의 새 길을 내실 수 있다.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눅24:18-21).

두 제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준 충격에 빠져 있다. 사흘째라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가까이 계신데도 알아채지 못한다. 십자가 사건 외에 다른 것은 두 제자에게 보이지 않는다. 십자가에 빠져 있으면 부활을 볼 수 없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어떤 것에 빠져 있으면 다른 것을 볼 수 없다. 몰입의 함정이다. 나쁜 것에 빠져 있다면 좋은 것을 놓칠 수 있고 좋은 것에 빠져 있다면 더 좋은 것을 놓칠 수 있다.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24:24-27).

예수님은 십자가 사건 후 3일 만에 살아나실 것을 연거푸 말씀하셨다(마16:21, 20:18-19). 최후의 만찬 후 겟세마네로 기도하러 가시면서도 예수님은 부활에 관해 또 언질을 주셨다(마26:32). 그러나 제대로 듣고 믿은 제자는 없었다. 아무도 부활의 예수님을 먼저 기다리거나 찾지 않은 것이다.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에 관해 예수님이 일일이 설명하시자 드디어 두 제자는 십자가 너머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눅24:32-35).

두 제자는 십자가 사건에 매몰된 상태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십자가가 끝장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두 제자가 보지 못한 새 차원이 있었다. 부활이었다. 예수님이 십자가 너머의 부활을 가리키시자 두 제자는 신앙의 새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예수님은 길이시고 부활이시다. 예수님 안에서 끝장은 없다. 원래 예수님의 십자가는 꽈배기처럼 부활과 맞닿아 있었다. 십자가와 부활이 꽈배기처럼 맞닿아 있듯이 지상계와 천상계도 그렇지 않을까.

항성 100조 개를 품고 있는 초거대 은하 'IC 1101'까지의 거리는 지구에서 10.45억 광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구에서 천상계의 하나님 보좌 앞까지의 거리는 100억 광년쯤 될까. 우리의 사후에 우리의 영혼이 몇 시간 만에, 또는 며칠 만에 천상계에 도달한다면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빛보다 억만 배나 빠르게 이동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천상계가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전자라면 우리의 영혼이 그 이동 속도를 견딜 수 있을까. 후자라면 한 시간 만에도 이동할 수 있다.

지상계와 천상계는 서로 엉켜 있는 게 아닐까. 꽈배기처럼 각자 독립적이지만 서로 붙어서 꼬여 있듯이 말이다. 꽈배기는 하나인 듯이 둘이고 둘인 듯이 하나다. 서로 붙어 있을 뿐, 각자 따로다. 천상계의 천사는 지상계를 알고 넘나들 수 있지만 지상계의 인간은 천상계를 모르고 넘나들 수 없다. 그런데 우리의 사후에 우리의 영혼은 천사의 안내에 따라 꽈배기처럼 지상계에 붙어 있는 천상계로 쉽게 이동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의 영혼이 구천을 헤맬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떤 것에 매몰되면 주변의 다른 것을 보지 못한다. 엘리야는 자신의 쫓기는 처지에 매몰된 나머지 하나님의 큰 그림을 알 수 없었고 두 제자는 십자가 사건에 매몰된 나머지 예수님의 새 길을 알 수 없었다. 꽈배기처럼 절망은 희망과 맞붙어 있고 좌절은 도약과 맞붙어 있다. 십자가는 부활과 맞붙어 있고 지상계는 천상계와 맞붙어 있다. 신앙도, 인생도, 비즈니스도 꽈배기와 같다. 더 나은 차원이 늘 가까이 맞붙어 있는 것이다. 그 접점의 출입문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자.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니 그들은 그 모든 형제를 통솔하는 자이며'(대상12:32). 시대의 흐름을 분간할 줄 알아야 남들을 통솔할 수 있다. 이 시대의 가장 큰 흐름은 기후위기다. 온실가스 증가는 지구 온난화를 초래하고 지구 온난화는 해수면 상승을 초래하고 해수면 상승은 해안도시 침수를 초래하게 된다. 네덜란드를 비롯해 여러 나라들이 천문학적인 돈을 쏟으며 제방을 쌓는 등 해안도시 침수에 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부산 일대, 서해안 일대, 인천 일대가 침수될 것으로 보인다. 2030년 태풍이 상륙하면 인천공항 등 국토 6%가 잠기고 인구 332만 명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한다. 기후위기는 또한 감염병 증가도 초래할 것이다. 지구 온난화는 빙하 붕괴를 초래하고 빙하 붕괴는 영구 동토층의 동물 사체에 얼어 있던 바이러스와 세균을 다시 불러내고 있다. 고대의 바이러스와 세균에 대해 면역력을 못 갖춘 현대인이 코로나19보다 더 센 감염병 증가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다.

해안도시 침수와 감염병 증가를 초래하는 기후위기의 주범은 개인의 탐욕적인 편리 추구와 기업의 탐욕적인 이윤 추구다. 개인은 환경 파괴적인 소비를 포기해야 하고 기업은 환경 파괴적인 이윤을 포기해야 한다. 인간의 누적적인 환경 파괴 때문에 많은 생물종이 멸종하는 중이고 폭염, 폭우, 폭설, 한파, 가뭄, 산불, 태풍, 쓰나미 등의 자연 재해가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중이다. 이 시대의 가장 큰 관심사는 친환경이다. 친환경적이지 않는 것은 다 지구 전체의 적이다.

기후위기를 선두로 해서 가상화폐, 인공지능, 메타버스도 이 시대의 큰 흐름들이다. 특히 메타버스는 수년 후 지배적인 경제체계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한때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유행했듯이 지금은 메타버스라는 말이 유행이다. 메타버스가 4차 산업혁명의 완결판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메타버스 구현에 최첨단 ICT기술들이 동원되기 때문이다. 메타버스에 다양한 영역이 있지만 가장 쉽게 메타버스를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은 VR기기를 직접 사용해 보는 것이다.

여러 VR기기들이 나와 있는데 페이스북의 오큘러스 퀘스트2가 우세하다. 기존의 VR기기에 비해 좀 가볍고 화질, 입체감, 성능이 우수하다. 가격은 싸진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100만 대가 팔리는 데 79일이 걸렸다. 아이폰의 경우는 74일이었다. 2022년에는 오큘러스 퀘스트3가 2,000만 대 가량 출하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정도의 성장 속도라면 페이스북의 기대대로 VR시대 곧 메타버스 시대가 스마트폰 시대를 뒤이을 수도 있다.

오큘러스 퀘스트2는 고사양 PC가 없어도 구동 가능한 독립형이다. 여기서 구동할 앱을 스마트폰으로 다운받아서 게임, 스포츠, 여행, 넷플릭스 영화, 유튜브 영상 등을 즐길 수 있다. 멀미가 나거나 어지러운 것이 이전보다는 덜하다. 몰입감은 PC나 스마트폰보다 뛰어나다. VR기기용 대작이 나오고 신작들이 쏟아진다면 VR기기 수요가 한층 늘어날 전망이다. VR기술, VR기기가 계속 발전하는 중에 VR콘텐츠까지 뒷받침된다면 VR산업의 장래는 밝다고 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 지금의 우리는 그 옛날에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일이 이스라엘에 국한됐다면 우리의 일은 전 지구적일 수 있다. 어린 세대일수록 풀어야 하는 과제가 기후위기와 같이 전 지구적인 것이다.

대다수는 평생에, 또 대대로 성실하게 노력해서 돈을 벌었다. 3대에 걸쳐 계속 노동만 팔았다면 4대부터는 돈으로 돈을 버는 금융자산가가 나와야 한다. 금융자산가는 부동산도, 주식도, 귀금속도, 원자재도, 외환도, 가상화폐도, NFT도 다 다룰 수 있다. 그 결과 더 적은 노동으로 더 많은 돈을 벌게 되고 더 창조적인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된다.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시라고(신8:18), 또한 좋은 협력자를 만나게 해 주시라고(잠27:17) 주님께 간구하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믿는 사람이 말에 이런저런 조건을 달지 말라는 것이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돌아가거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새번역 막7:29). 믿는 사람이 말을 할라치면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나에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현대인의성경 빌4:13). 믿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하는 말이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8:18). 축복의 말씀이든, 저주의 말씀이든, 선포의 말씀이든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됐다. 예수님의 이런 권세가 우리에게도 있다. 우리는 축복의 말, 저주의 말, 선포의 말로 천지를 매고 풀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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