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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는 광야에서 다 죽었더라
cleven 718 2022-01-08 18:00:29
 
 

220109

사실은 새 포도주가 좋다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출1:6-9).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출1:22).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어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가 갈대 사이에 두고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출2:1-5).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출2:11-13). 핏줄이 강하게 당겼던지 하루는 모세가 히브리 동족을 친 이집트인을 살해하고 만다.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들의 아버지의 양 떼에게 먹이려 하는데'(출2:14-16).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그의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이르되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출2:21-24).

히브리인 모세는 이집트 왕실의 왕족으로서 출중하게 성장했고(행7:22) 히브리 동족을 도우려는 계획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순간 도망치는 살인자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집트 왕실에서 40년을 살았던 모세는 이제 미디안 제사장 집안에서 40년을 살아야 했다. 미디안 제사장의 딸과도 결혼했다. 미디안 제사장 집안에 장가갔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요셉도 이집트 제사장 집안에 장가갔지 않은가(창41:45).

모세는 이집트 왕실에서 점점 세력을 키우고 히브리 동족도 돌보려는 계획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의 약점과 오점까지 포함해서 모세의 걸음을 더 큰 그림 가운데로 인도하셨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 이집트에서 천 리 길의 미디안으로 도주한 모세는 거기서 장인의 양 떼를 치며 나이 80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나날을 보내다가 어느 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출3:2-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출3:7-8). 이제 하나님의 오랜 약속이 이루어져야 할 때가 됐다. 히브리 백성의 이집트 탈출과 가나안 정착이다.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3:9-12).

왜 하나님은 모세가 미디안에서 40년을 보낸 후에야 모세를 부르셨을까. 모세의 믿음과 순종이 더 자라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세에게 히브리 동족을 향한 애정과 열정이 컸겠지만 믿음과 순종은 한참 모자랐을 것이다. 또한 히브리 백성의 고통과 간절함이 아직 극단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극단적인 궁지에 몰리지 않고서는 이집트 탈출을 감행하지 않을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모세를 죽이려던 이집트 왕이 죽고 새 왕의 때가 시작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 새 왕은 모세와 문무를 겨루며 함께 자랐던 왕자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세가 대적할 만했을 수도 있다. 이집트 왕족의 경험이 있었기에 모세는 이집트 왕실의 웅장한 위용 앞에서도 결코 기죽지 않았을 것이다. 모세 외에 누가 이집트 왕에게 대적할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롬11:29). 어떤 것이든 다 합력해서 선한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롬8:28). 모세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그랜드 디자인을 성취하는 데 최적이었다.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 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하며 애굽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 하고 그 백성을 재촉하여 그 땅에서 속히 내보내려 하므로'(출12:31-33).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 그들이 애굽으로부터 가지고 나온 발교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으니 이는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나므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며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출13:37-40). 히브리 남아를 죽이라는 왕명은 어느 순간 철회됐을 것이다. 히브리 장정만 60만 명으로 늘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들의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슬러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더라'(출14:26-29).

이집트 왕은 사람과 가축의 초태생이 전멸하는 10번째 재앙을 당하고서야 비로소 히브리 백성의 이집트 탈출을 허용했다. 그러나 아직 이집트 왕의 마지막 고집불통이 남아 있었다. 이집트 군대가 히브리 백성을 추격하다가 홍해 물살에 수장되고 만 것이었다. 히브리 백성은 모세의 지도 아래 430년간의 노예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이집트 탈출에 완벽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이탈도 없이 이집트 탈출이라는 새 흐름에 모두 올라탄 덕분이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맹세하여 이르시되 애굽에서 나온 자들이 이십 세 이상으로는 한 사람도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땅을 결코 보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온전히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러나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온전히 따랐느니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에게 사십 년 동안 광야에 방황하게 하셨으므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한 그 세대가 마침내는 다 끊어졌느니라'(민32:10-13).

이집트에서 히브리 백성의 고통과 간절함이 극심했기에 이집트 탈출의 단일대오가 가능했다. 그러나 이집트 탈출은 시작이었지 끝이 아니었다. 가나안 정착이 최종 목표였다. 그런데 대다수 히브리 백성은 이집트 탈출 정도의 변화만 가능했지, 그 이상의 변화는 어려웠다.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의 고행이 반복되자 어떤 사람들은 과거의 삶을 그리워했고 다른 사람들은 과거의 삶으로 되돌아가자고 했다. 히브리 백성의 변화는 저 정도쯤에 머물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을 히브리 백성에게 주시고자 이집트 탈출을 이끄셨지만 히브리 백성의 가나안에 대한 기대치는 최악이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13:32-33).

히브리 기성세대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전부가 하나님의 약속하신 가나안에 대한 악평에 동조했다. 이집트 탈출의 종착점은 가나안 정착이다. 그러나 가나안에 대한 기대치가 최악인데 어찌 가나안 정착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겠는가. 변화의 정도가 이집트 탈출에 머물렀던 기성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다 죽어야 했다. 이제 변화 탄력성이 큰 신세대만 남았다. 기성세대가 이집트 탈출을 위해 단일대오를 형성했다면 신세대는 가나안 정착을 위해 단일대오를 형성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수6:2-3).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수6:20-21).

히브리 신세대만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었다. 기성세대가 끝까지 계속해서 변화하기란 정말 어렵다.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능했을 정도다. 하나님은 시대를 바꾸신다(단2:21). 시대의 변화에 걸맞게 변화해야 한다.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정도의 변화에서 멈출 게 아니라 가나안 정착까지의 변화를 거듭해야 한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기성세대였지만 과거의 고정개념을 계속 탈피했기에 가나안이라는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있었다.

대다수 기성세대는 묵은 포도주가 좋다는 고정개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과거 생활을 그리워하고 거기로 되돌아가려고 한다. 사실은 새 포도주가 좋다. 새 포도주를 담으려면 새 부대로 바뀌어야 한다(눅5:37-39). 새 부대가 되려면 머리와 마음의 고정개념을 새 흐름의 새 개념으로 교체해야 한다. 기성세대는 람보르기니 자동차나 롤렉스 시계를 좋아한다. 그런데 Z세대는 가상부동산을 사서 건물을 짓고 갤러리를 만들어서 NFT를 거래하는 것을 좋아한다.

Z세대는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구별하지 않고 가상세계를 넘나들며 즐길 줄 안다. 이게 기성세대에게는 헛짓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 시대의 큰 흐름은 현실세계보다 더 현실적인 세계를 가상세계에다 구현하고 즐기는 방향으로 내달리는 중이다. 기성세대도 SNS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상당히 익숙해졌다. 그러나 블록체인, 가상화폐, 메타버스, NFT가 융복합적으로 확장 중인 새 경제 생태계의 주역이 되는 데까지는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새 경제 생태계의 주역이 되려면 새 경제 생태계를 호평하면서 정복하려는 의지가 강해야 한다. 거품이니, 쓰레기니, 사기니 하면서 악평만 해서는 그 문 앞에 당도하기도 전에 도태되고 말 것이다. 시대의 흐름을 알아야 남들을 이끌 수 있다. 장차는 유전자 증명이라는 흐름까지 나타날 전망이다. 지금의 흐름은 가상세계의 지속적인 확장이다. 이게 새 가나안이다. 여리고성과 같은 진입장벽이 버티고 있을지라도 계속 도전하다 보면 끝내 새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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