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누리
 
 
1
1
  
ID/PW 찾기





접속통계


이전 글 다음 글 홈으로 돌아가기 리스트
강한 판 갈이는 재빨리 수용하라
cleven 504 2022-03-12 00:46:23
 
 

220313

신세대가 늘 구세대를 이겼다

'내가 영원히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나단이 이 모든 말씀과 이 모든 계시대로 다윗에게 전하니라'(대상17:14-15). 하나님은 나단 신탁을 통해 다윗 왕조의 영원한 지속성을 약속하신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음이더라'(왕하8:19). 여호람이나 므낫세처럼 다윗 왕조에 악한 왕이 여럿 있었지만 하나님은 다윗 왕조의 등불을 끄지 않으신다.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슥4:9). 바벨론 포로 여고냐의 손자였던 스룹바벨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해 성전을 다시 세운다. 다윗의 아들이었던 솔로몬이 성전 건축자였다면 다윗의 직계자손이었던 스룹바벨은 성전 재건축자다.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마1:12-13). 예수님은 다윗의 직계자손 곧 스룹바벨의 직계자손으로 태어나셨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2:10-11). 예수님은 다윗 왕조의 마지막 왕이시자 하나님 나라의 첫 왕, 마지막 왕, 그리고 영원한 왕이시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 구약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신약 시대의 예수님을 세상에 알린 세례자 요한에 따르면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다. 다윗 왕조의 마지막 왕을 넘어 구세주이신 것이다.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요1:32). 다른 왕들이 제사장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았다면 예수님은 직접 하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으셨다. 예수님은 왕,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10:11). 다른 왕들과 정반대로 예수님은 백성 위에 군림하시지 않고 백성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왕이시다. 예수님의 핵심 과업은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기뻐할 왕명을 하달하시는 것이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눅4:18).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시는 예수님은 무엇보다 가난한 사람들의 왕이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11:4-5).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왕이시라는 증거는 가난한 사람들이 기뻐할 왕명이 하달된다는 점이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 예수님과 함께 시작된 하나님 나라에서는 구약 시대의 자격 조건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 까다로운 안식일 규정, 다양한 율법, 많은 제물을 요구하지 않는다. 누구든지, 가난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하나님 나라로 침입해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수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초청하신다. 하나님 나라는 어렵고 무거운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은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난한 너희는 행복하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지금 굶주리는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는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현대인의성경 눅6:20-21).

예수님과 함께 시작된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난함, 굶주림, 울음이 해소될 것이다. 그래서 그런 문제를 가진 사람들은 행복하게 될 것이다. 가난해서, 굶주려서, 울어서 행복한 게 아니라 그런 문제가 해소될 것이니 행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가난함, 굶주림, 울음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그러나 너희 부요한 사람들에게는 불행이 닥칠 것이다. 너희는 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위로를 이미 다 받았다. 지금 배부르게 먹고 지내는 자들아, 불행하게도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지금 웃는 자들아, 불행하게도 너희는 슬퍼하며 울 것이다'(현대인의성경 눅6:24-25).

예수님과 함께 시작된 하나님 나라에서는 게임 규칙이 완전히 다르다. 가난한 사람들이 수용되고 부요한 사람들은 배척된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눅18:25). 이제 배부른 사람들에게 굶주리게 되는 불행, 웃는 사람들에게 울게 되는 불행이 닥칠 것이다.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요1:35-39).

구약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세례자 요한은 신약 시대의 커튼을 여실 예수님을 한 번 더 소개한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러자 저 소개를 아마도 두 번째 듣던, 세례자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추종한다. 신뢰하던 스승의 선언이기에 그대로 믿고 받아들인 것이다. 두 제자 중 하나는 안드레였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요1:40-42). 예수님의 거처에서 예수님과 먼저 회동한 안드레는 자기 형 시몬에게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소개했다.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요1:43-46). 예수님의 제자단에 발탁된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메시아로 전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1:47-49).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는, 나다나엘의 반문은 옳다. 예수님은 베들레헴 출신이시다. 나다나엘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예수님을 찾았다. 예수님과의 첫 회동에서 한두 번 대화한 후 나다나엘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왕이시라고 고백하고 만다. 반신반의에서 극존칭으로 완전히 돌아선 것이다.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눅5:9-11). 예수님은 베드로의 풍어 기적을 통해 야고보와 요한도 부르셨다.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눅5:27-30). 예수님은 세리 마태까지 부르셨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눅5:32-34).

세리 마태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감격했던지 큰 잔치를 베풀었다. 거기에는 마태의 지인들도 많이 있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트집을 잡았다.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구약 시대의 자격 기준으로 신약 시대의 하나님 나라를 비방하고 있는 것이다. 고정개념에 묶인 저들이 어찌 하나님 나라의 게임 규칙을 알 수 있겠는가.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눅5:37-39).

묵은 포도주가 좋다는 고정개념에 묶여 있는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는다. 예수님은 다윗 왕조의 마지막 왕이시자 하나님 나라의 첫 왕, 마지막 왕, 영원한 왕이시다. 예수님의 등장과 함께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 나라로, 율법은 복음으로, 제사는 예배로 바뀌었다. 묵은 포도주인 구약 시대가 닫히고 새 포도주인 신약 시대의 커튼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구약 시대의 고정개념에 묶인 사람들은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의 사람들이 못마땅할 뿐이다.

저들의 눈에 예수님은 무정부주의적 대중 선동가일 테고 예수님의 추종자들은 죄인일 테다. 기존의 고정개념으로는 새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일 수 없다. 고위 관료들의 눈에 가상화폐 시장은 투전판처럼 보였을 것이고 2030들은 투전판의 노름꾼들처럼 보였을 것이다. 저들의 억압으로 가상화폐 시장에 겨울이 왔고 2030들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불한당으로 내몰렸다. 저들이 청년세대의 미래를 짓밟은 것이다.

청년세대가 미래의 흐름을 향해 계속 나아간다면 고위 관료들은 과거의 기준을 청년세대에게 강요하면서 청년세대의 미래를 가로막는다. 새 흐름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미래세대에게 영향력만 행사하려는 고위 관료들은 청년세대에게 악이요, 적이다. 새 흐름에 대해 모르는 고위 관료들은 입을 다문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더 낫다.

예수님과 함께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계임 규칙은 구약시대와는 완전히 다르다. 세례자 요한은 구약시대에서 가장 큰 사람으로 평가될지언정 신약시대의 어린아이보다 못하다. 판이 바뀌었고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경제 판에서 최고수일지언정 새 경제 판에서는 하수일 수 있다. 워런 버핏은 주식 판에서 최고수이지 가상화폐 판에서는 아닌 것이다.

새 판의 새 규칙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고 수용하는 사람이 있다. 수용하되 빠르게 수용하는 경우도 있고 느리게 수용하는 경우도 있고 겨우 수용하는 경우도 있다. 바리새인들, 율법사들, 서기관들은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의 새 규칙을 거부했고 제자들은 재빠르게 수용했다. 영적인 영역이든, 세상적인 영역이든 판 갈이가 강하게 일어나는 때가 있다. 강한 판 갈이는 거부하지 말고 느리게라도 수용해야 한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묵은 포도주가 좋다는 고정개념에 묶여 있는 사람이 어찌 새 포도주를 맛보겠는가. 율법이 좋다는 고정개념에 묶여 있는 사람이 어찌 예수님, 하나님 나라, 복음을 받아들이겠는가. 새 시대는 늘 구시대를 이겼고 신세대는 늘 구세대를 이겼다. 기성세대일수록 새 시대의 새 흐름을 더 알자. 알지 않으려거든 입이라도 다물자.

 
- 596 -수정 삭제 답변


 

Copyright ⓒ dreamel, All rights reserved   Since 2003.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