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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even 676 2022-11-05 23:12:49
 
 

221106



개인책임과 국가책임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한 종이 와서 말하였다. '주인의 자녀들이 맏아들의 집에서 식사를 같이하며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막에서 태풍이 불어와 집 네 모퉁이가 무너져 내려 그들이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나만 이렇게 간신히 살아나와 주인께 보고하러 왔습니다.' 그러자 욥은 일어나 자기 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하며'(현대인의성경 욥1:18-20).



욥은 하나님을 경외했고 악에서 떠난, 정직한 거부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사막에서 태풍이 휘몰아쳐 욥의 장남의 집 네 모퉁이가 무너졌다. 마침 욥의 자녀들이 함께 모여 식사 중이었다가 다 죽고 말았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정직하게 산 욥에게 어찌 이런 참변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인가. 그것도 7남 3녀가 한 자리에서 한꺼번에 몰살당했다는 것인가. 욥의 세 절친이 욥을 찾아와 함께 슬퍼하며 위로했다. 저들은 7일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욥의 곁을 지켰다.



그러나 저들 절친의 마음에 의구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무슨 죄가 있기에 이런 참사를 당한 것인가. 숨겨진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아닌가.' 하나님에 대한, 욥의 원망과 항변이 커질수록 저들의 의구심도 커졌다. 결국 저들은 노골적으로 죄, 저주, 심판의 관점에서 욥의 참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미 절친의 눈이 아니었고 형사의 눈이었다. 욥의 죄를 추궁하려는 저들의 참견이 욥을 더 힘들게 했다. 위로가 취조로 바뀐 것이었다.



욥의 세 절친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저들은 7일 동안 욥의 곁에서 온전히 위로만 했으니까. 우리는 다짜고짜 처음부터 형사의 눈으로 취조하지 않는가. 2005년 태국, 인도네시아 등지를 휩쓴 동남아 쓰나미로 20만 명 넘게 목숨을 잃었다. 이에 대해 고 김홍도 목사(금란교회)는 '크리스마스 즈음에 놀러간 이교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주장했다. 2006년 뉴올리언스 카트리나에서 발생한 허리케인을 두고서는 '동성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설교했다.



미국의 유명 부흥사인 팻 로버트슨 목사는 2001년의 9․11대참사를 '동성애자, 낙태주의자, 무신론자를 벌하는 하나님의 채찍'이라고 했다. 또한 2010년의 아이티 대지진을 '악마의 저주'라고 했다. 고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는 2011년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일본의 대지진과 쓰나미에 대해 '우상숭배, 무신론, 물질주의로 나아가는 일본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정한철, '미국 토네이도가 하나님의 심판?', 뉴스앤조이, 2013. 05. 29.).



저렇게 깊이도 없고 고민도 없이 피상적이기만 한 성경해석을 일부 미숙한 크리스천들이 저들 목사의 외형적인 영향력에 눌려 아무 성찰도 없이 마구 퍼 나르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의 절친들 곧 욥의 2차 가해자들에게 분노하시며 욥의 손을 들어 주신다.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옳지 못함이니라'(욥42:7).



참사를 당한 피해자와 피해자 유가족에 대해 죄와 심판이라는 잣대를 너무 안일하게 들이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런 고질병에 특히 크리스천들이 걸리지 말아야 하는데 많이 안타깝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13:4-5).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죽었다. 이런 참사를 놓고서 사람들은 죄의 경중과 결부시켜 생각하곤 한다. 죄가 많아서 참사를 당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생각에 급제동을 거신다.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죄가 많아서 참사를 당한다면 너도 똑같이 당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아니, 네가 더 먼저 당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남들의 죄의 경중을 따지기 전에 먼저 네 죄의 경중부터 따지라는 것이다. 남들이 당한 참사 앞에서 남들의 죄의 경중을 따지는 고질병은 특히 크리스천들 중에서 자주 도지곤 한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의 압사 사고로 156명이 죽었고 33명이 중상을 입었고 162명이 경상을 입었다. 이에 대해 일부 크리스천들은 핼러윈 데이라는 귀신놀이에 왜 갔느냐며 여전히 죄의 경중을 따졌다.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와 같은 대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왜 일부 크리스천들의 이런 반응이 돌출하는 것일까. 먼저는 일부 천박한 목사들의 조잡한 성경해석 때문이다. 사회학적인 지식, 신학적인 깊이. 고민의 시간도 없이 그저 현재의 상황과 관련된다 싶은 성경구절을 지나치게 단순화해 대입함으로써 곧장 하나님의 심판을 주장해 버리는 것이다. 다음은 일부 미숙한 크리스천들의 무식한 열심 때문이다. 아무 성찰도 없이 이런 주장을 마구 퍼 나르는 것이다.



남들의 참사 앞에서 크리스천들이 가져야 할 태도 4가지를 생각해 보자. 첫째는 피해자 유가족들과 함께 아파하는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심판 운운하려는 고질병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셋째는 개인책임으로 돌려 2차 가해를 가하지 않는 것이다. 넷째는 사회책임, 정부책임, 국가책임을 반드시 물어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다. 2014년의 세월호 참사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는 한탄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아주 신령한 것 같고 대단한 영적 부흥이 있는 것 같은 교회의 목사라도 사회문제들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상층부 권력층의 사회책임에 관해 설교할 줄 모른다면 반쪽짜리 '사쿠라'일 가능성이 크다. 목사, 교회, 교단을 평가하는 핵심 기준 중의 하나는 사회적 설교의 유무다. 성령의 은사가 폭발하는 것 같은 교회일지라도 사회적 설교가 없다면 그저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 하나님은 사회적 약자였던 히브리 노예들의 울부짖음을 가장 먼저 들으신 분이심을 명심하자.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4:9-10).



야베스의 어머니는 너무 고생하며 아들을 낳아서 그 아들의 이름을 야베스 곧 고통이라고 지었다. 야베스는 자기 이름이 불릴 때마다 자기 이름과 정반대의 삶을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야베스의 평생 기도제목은 아주 확실했다.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야베스의 평생 기도제목을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평안한 부자'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전에 먼저 기도제목부터 뼛속에 깊이 새겨야 한다. 일단 뼛속에 깊이 새겨진 기도제목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응답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절대로 사라질 수 없고 계속 우러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급히 기도부터 하면서 기도제목을 정리하는 사람도 있고 차분히 기도제목부터 정리하고 기도하는 사람도 있다. 급한 기도는 먼저 기도부터 해야 할 것이고 중요한 기도는 먼저 기도제목부터 정리해야 해야 할 것이다.



당대와 후대를 놓고 기도한다면 이렇게 기도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당대와 집안후대가 부귀영화와 건강장수, 부티와 귀티와 선티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죽을 때는 잠자듯이 죽게 하옵소서.' 상당한 시간이 투자돼서 잘 정리된 기도제목은 아주 효율적이다. 길게, 장황하게, 오래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 짧고 간단하지만 이미 뼛속에 깊이 응축된 기도제목이기에 거기서 우러나는 기도의 힘이 세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영혼육과 환경의 형통을 주시라는 기도제목을 정하고 반복해서 기도하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신5:10). 자기 가문을 위해서는 천 대, 만 대, 그리고 영원까지 은혜를 주시라는 기도제목을 정하고 반복해서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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