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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권력과 신앙인의 복종
cleven 20 2021-11-07 19:36:52
 
 

211107

공권력에 대한 복종과 불복종

'너희는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땅에서는 좀먹고 녹슬어 못 쓰게 되고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가기도 한다. 너희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어라. 그 곳은 좀먹거나 녹스는 일이 없으며 도둑이 들어와 훔쳐 가지도 못한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현대인의성경 마6:19-21). 재물은 소중하다. 그러나 죽어서 재물을 갖고 갈 수 없다. 살아서 재물을 하늘에 쌓으면 된다. 신앙인의 우선순위 2가지 중의 첫째는 재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이다. 재물을 물신처럼 떠받들지 말고 발로 밟으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신앙인의 우선순위 2가지 중의 둘째는 자기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구하는 것이다. 늘 하나님의 일을 먼저 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기 일을 하는 중에 갑자기 하나님의 일이 침입하면 자기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구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앙인이라면 재물을 발로 밟아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일을 우선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든지 정부 당국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력이 다 하나님에게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권력을 거역하면 하나님이 세우신 권력을 거역하는 것이 되고 그런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통치자가 두려울 것이 없으나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두려워합니다. 통치자를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선한 일을 하십시오. 그러면 그에게서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현대인의성경 롬13:1-3).

하나님은 모든 권력을 알고 계신다. 모든 권력은 하나님의 발아래 있다. 지옥 권력마저도 하나님의 허용 아래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모든 권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 그래서 신앙인은 국민으로서 국가권력에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로마서 13장은 출애굽기의 제한 속에서 해석돼야 한다. 하나님은 이집트 제국의 파라오 권력을 허용하시지만 파라오 권력이 이스라엘 백성을 압제하는 한 허용하실 수 없다.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국가권력에 대해 신앙인은 불복종 운동을 벌일 수 있는 것이다.

'너는 내가 명령한 모든 것을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그것을 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하라. 그러나 내가 바로를 완고하게 할 것이니 내가 이집트에 아무리 많은 기적을 행하여도 그가 너희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그때 내가 이집트에 무서운 재앙을 내려 그 땅에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해 내겠다. 내가 이집트에 내 능력을 나타내어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해 낼 때 이집트 사람들이 내가 여호와임을 알게 될 것이다'(현대인의성경 출7:2-5).

파라오 권력의 히브리 민족에 대한 압제는 지나치게 부당한 것이었다. 그래서 지도자 모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파라오 권력에 대타격을 가하고 히브리 민족의 대탈출을 이끌었다. 파라오 권력도 하나님의 허용 아래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을 부당하게 압제하지 않는 한 파라오 권력은 계속 허용될 참이었다. 그러나 파라오 권력은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대적했고 그 결과는 대재앙이었다. 로마서 13장은 출애굽기와 조화를 이루며 바르게 읽혀야 할 것이다.

'그는 여러분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악한 일을 하면 두려워하십시오. 그가 쓸데없이 칼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그는 악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형벌을 내리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러므로 꼭 벌을 준다고 해서 복종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위해서도 복종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여러분은 세금도 잘 바쳐야 합니다. 당국자들은 이 일에 항상 힘쓰는 하나님의 일꾼들입니다'(현대인의성경 롬13:4-6).

국가권력의 정당한 요구에 대해 신앙인은 순응해야 한다. 불응했다가는 경찰청, 검찰청, 국세청, 감사원, 금융감독원 등 다양한 공권력의 제재를 받게 될 것이다. 신앙인은 국민으로서 국방의 의무, 납세의 의무, 교육의 의무, 근로의 의무, 환경보전의 의무 등 5대 의무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부당한 국가권력에 대해서도 복종해야 하는가.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명을 살상하면서 세워졌다면 정당하지 못하다. 전두환 신군부정권이 그랬다. 부당한 국가권력에 대해 신앙인은 저항할 수 있다.

국가권력이 반신적, 반성경적이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국가권력이 무신론을 강요하고 신앙생활과 예배생활에 제재를 가한다면 신앙인은 국가권력에 맞서 싸울 수 있다. 정당한 국가권력일지라도 요구가 부당하든지, 책임을 회피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과세나 통제가 과도한 경우, 당연한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 신앙인은 저항할 수 있다. 국가권력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신앙인의 기준은 성경과 생명이다.

성경과 생명에 위배되면 신앙인은 국가권력과 맞서 싸울 수 있다. 역사의 수많은 독재자들이 국민의 생명을 살상했다. 반성경이고 반생명이다. 신앙인이라면 찬성과 지지를 하지 말아야 하고 반대와 저항을 해야 한다. 정당한 국가권력일지라도 그 요구가 반성경이고 반생명일 수 있다. 그렇다면 사안별로 저항할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은 정당한 정권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의 요구가 전부 다 정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국가권력의 부당한 요구에 대해 신앙인은 저항할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은 정당한 정권이니 무조건 지지한다든지, '이니'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든지 하는 것은 신앙인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정당한 정권이라도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반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백신접종과 관련한 정부요구는 옳지 않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이미 4차 접종까지 운운하는 상황이다. 물론 코로나19 시국이 계속되는 한 N차 접종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문제가 대두된다. 하나는 접종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다.

접종 후 돌파감염이 여전한 데다 중증예방 효과도 그다지 크지 않다. 다른 하나는 접종 후유증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지난 2월 26일 접종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백신접종 사망자(인과성 미확인)가 1,200명에 달했고 영구장애 등 위중증환자가 11,000명에 달했다. 접종 후 손 쓸 틈도 없이 돌연 사망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접종이득이 더 크다는 앵무새 발언을 반복하며 국민을 오도하고 있다. 접종률 80% 목표는 폐기돼야 한다.

자유민주국가에서 접종률 80%는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다. 자살률 세계 1위만큼이나 치욕적이다. 슬로베니아 정부는 백신접종 후 1명이 죽자 인과성 밝힐 때까지 해당 백신접종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크로아티아 정부는 접종률 50%에서 접종중단을 선언했다. 문재인 정부가 접종률 80%와 N차 접종을 계속 밀어붙이는 한 날마다 백신총탄에 살상되는 소시민들의 피눈물이 하늘에 닿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요구 10개가 옳을지언정 이 1개는 단언컨대 틀렸다.

백신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데이터가 급증하는 만큼 대다수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극소수의 희생과 불행은 어쩔 수 없다는 집단면역 논리는 반성경이고 반생명이다. 신앙인에게는 성경과 생명이 국가권력의 요구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신앙인은 성경과 생명의 기준으로 추구하는 이념, 지지하는 정당, 속한 지역을 초월할 수 있어야 한다. 영남 출신이니까 박근혜 보수당을 지지하는 '박사모'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호남 출신이니까 문재인 진보당을 지지하는 '대깨문'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박사모는 성경과 생명의 기준보다 박근혜를 더 위에 두었고 대깨문은 문재인을 더 위에 둔다. 박사모도, 대깨문도 반성경이고 반생명이다. 둘 다 사회발전과 국민통합에 해악을 끼친다. 하나님과 성경을 믿는다면서 이념, 정당, 지역을 초월하지 못한다. 박사모와 대깨문은 내용만 정반대일 뿐, 똑같은 쌍둥이다. 지난 5년간 대깨문은 자기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최악보다 차악이 낫다는, 희한한 논리를 펴며 상대편을 무조건 공격했다.

신앙인이라면 성경과 생명의 기준에 따라 이명박과 박근혜는 물론 문재인과 조국도 반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깨문은 조국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했다. 물론 조국이 최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아 보일 수는 있다. 박사모나 대깨문 중에는 신앙인도 많다. 저들 신앙인은 박근혜나 문재인이 기준이다. 우상숭배나 다름없다. 신앙인이라면 이념, 정당, 지역을 초월할 수 있어야 하고 정당한 국가권력의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도 저항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눅5:3-6).

상대방을 믿는다는 것은 상대방의 인격과 말을 믿는 것이다. 상대방의 인격을 믿으면 상대방의 말도 믿는 것이고 상대방의 말을 믿으면 상대방의 인격도 믿는 것이다. 상대방의 인격을 믿는데 상대방의 말을 못 믿을 수 없고 상대방의 말을 믿는데 상대방의 인격을 못 믿을 수 없다. 그렇다면 상대방에 대한 믿음의 척도는 하나다. 상대방의 말을 믿느냐는 것이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움직였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왕상17:13-15).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의 말을 믿고 움직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요2:7-10).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움직였다.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마14:15-16). 안드레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움직였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눅6:8-9).

믿음은 말씀을 믿는 것이다. 성령 체험을 해도 말씀을 못 믿기도 한다. 성령 체험보다 말씀을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성령 체험은 자주 할 수 없지만 말씀을 믿는 것은 자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 예수님은 먼저 주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믿겠는가.

신앙인은 사회에 세금을 내고 또 교회에 십일조와 헌금을 한다. 교회생활과 헌금생활을 제대로 하다 보면 교회에 십이조 정도를 하게 된다. 그래서 어려운 형편의 일가친척이나 지인을 돕기도 어렵고 직장에서 밥 한 끼를 사기도 쉽지 않다. 각종 예배와 교회행사에 충실하다 보면 시간도 부족하다. 그래서 집안행사나 사회모임에 소홀하기도 한다. 돈과 시간이 빠듯하다. 그래도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먼저 주어야 할 것이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11월 21일 추수감사주일에는 추수감사헌금과 감사헌금을 교회에 내지 않고 각자 어려운 형편의 일가친척이나 지인이나 목회자에게 보내자. 가족끼리 합쳐서 최소한 10만 원 넘게 미리 정한 사람에게 송금하자. 마음뿐이고 많이 못 드려서 죄송하다며, 맛있는 밥 한 끼라도 사서 드시라며 드리자. 올해 추수감사주일은 추수감사헌금과 감사헌금이 없는 주일로 만들자.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믿음은 말씀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주다'는 단어는 원동사이기도 하고 보조동사이기도 하다. 원동사 주다는 무엇을 직접 주는 것을 말하고 보조동사 주다는 주는 겉모양새를 말한다. '해 주다, 봐 주다, 와 주다, 먹어 주다, 참아 주다, 살아 주다...' 원동사든, 보조동사든 주다가 풍성해지면 인간관계도 풍성해질 것이다.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먼저 주면 넘치게 돌려받을 것이고 먼저 헤아리면 도로 헤아림을 받을 것이다. 헤아림의 가장 먼저는 공감이다. 공감할 줄 모를수록 사이코패스다.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니 그들은 그 모든 형제를 통솔하는 자이며'(대상12:32). 이 시대의 큰 흐름은 대창조다. 수많은 메타버스를 구축하는 공간 대창조, 수많은 메타버스를 채우는 콘텐츠 대창조, 수많은 메타버스를 사용하는 경험 대창조,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 대창조가 동시다발로 일어나는 중이다. SNS 시대의 특징이 느슨한 연결의 폭증이었다면 메타버스 시대의 특징은 실감나는 경험의 폭증이다.

NFT는 상대적으로 늦게 등장했지만 가장 확장성이 큰 게임 체인저다. 이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NFT로 만들 수 있고 NFT로 만들어진 것이면 화폐처럼 유통될 수 있다. 무엇이든지 NFT가 될 수 있고 그래서 화폐처럼 거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확장성이 폭발적이다. 2021년 5월 하버드대학교의 조지 처치 유전학 교수는 자신의 유전자 데이터를 NFT로 만들기도 했다. 자녀의 출생 데이터를 NFT로 만들 수 있을 것이고 후일 자녀는 그 NFT를 경매에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 지금의 우리는 그 옛날에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도 해야 한다. 예수님의 일이 지리적으로 이스라엘에 국한됐다면 우리의 일은 전 지구적일 수 있다. 우리 앞에는 기후위기와 인공지능 확산에 따른 대형 난제들이 즐비하다. 누군가는 믿음과 용기를 갖고 덤벼들어 해결할 것이다.

대다수는 평생에, 또 대대로 성실하게 노력해서 돈을 벌었다. 3대에 걸쳐 계속 노동만 팔았다면 4대부터는 돈으로 돈을 버는 금융자산가가 나와야 한다. 금융자산가가 되면 모든 형태의 투자를 다 집행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그래서 더 적은 노동으로 더 많은 돈을 벌게 되고 더 창조적인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된다. 요즘은 20-30대도 조기 은퇴를 꿈꾸며 자산 형성에 골몰한다.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시라고(신8:18), 또한 좋은 협력자를 만나게 해 주시라고(잠27:17) 주님께 간구하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8:18). 축복의 말씀이든, 저주의 말씀이든, 선포의 말씀이든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졌다. 예수님의 이런 권능이 우리에게도 있다. 우리의 축복, 저주, 선포에 성취의 권능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축복, 저주, 선포로 천지를 매고 풀 수 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믿는 사람이 말에 이런저런 조건을 달지 말라는 것이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돌아가거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새번역 막7:29). 믿는 사람이 말을 할라치면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나에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현대인의성경 빌4:13). 믿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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