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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0 은혜, 그리고 믿음의 완주
cleven 92 2020-12-21 03:29:31
 
 

201220

은혜, 그리고 믿음의 완주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룻2:2-3).

룻은 때와 기회를 기다리지만 않고 시모의 뜨거운 지지를 받으며 행동에 나선다.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들어감으로써 전혀 다른 세상의 문을 열게 된다. 차를 끌고 움직이는 것이 곧 운(運)이다. 우리가 움직이는 중에 우연히 만나는 사람, 장소, 무엇이 우리를 전혀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곤 한다.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밤중에 그가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는지라.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룻3:7-9).

룻은 얼굴이 팔리는 수치와 소문이 도는 위험을 무릅쓰고 친히 보아스를 찾아가 직접 요구하는 용기를 내보인다. 룻의 착함과 용기는 하늘과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룻4:13).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룻4:18-22).

위로 유다와 다말에게 연결되고 아래로 다윗과 밧세바에게 연결되는 룻은 당대의 성공과 행복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중심인물로 쓰임받을 수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으로 갔지만 실상은 보아스의 밭이, 보아스가,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과 은혜가 룻에게로 다가와 완전히 룻의 삶을 뒤바꾼 것이었다.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막15:15-20).

군중 앞에서 채찍질을 당하시고 군대 앞에서 조롱과 모욕을 당하신 후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 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때가 제삼 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막15:21-25).

밤새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은 기진맥진하셨고 더 이상 십자가를 지실 수 없었다. 그 아침에 우연히 그 현장을 구레네 시몬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군인들이 그를 붙잡아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게 했다. 그는 졸지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야 했다. 그는 뜻밖에도 예수님의 최후를 낱낱이 목격하게 됐다. 제자들이 뿔뿔이 도망치고 없는 그 자리에서 그는 그 누구보다 더 가까이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일거수일투족을 온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헌신이 있는 거기에 마음이 있다. 헌신할수록 마음이 더 간다. 땀과 눈물과 피의 임산 과정을 거친 어머니가 어찌 자기 자식에게 무관심할 수 있겠는가. 어찌 자기 자식을 의심의 눈초리로 삐딱하게 바라볼 수 있겠는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예수님에 대해 무관심하고 의심한 적이 있던가. 땀과 눈물과 피의 헌신이 있다면 무관심할 수 없고 의심할 수 없다.

구레네 시몬은 제자들 중의 하나가 대신 졌어야 할 그 십자가를 억지로 졌다. 그는 거기서 남들과 달리 예수님을 조롱하지 않았고 묘한 이끌림으로 예수님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었을 것이다. 헌신은 유대감을 갖게 한다. 후일 그가 예수 신앙공동체에 편입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롬16:13).

구레네 시몬의 가족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 더 나아가 핵심 일꾼이 됐다. 구레네 시몬의 아내는 사도 바울의 어머니로 불릴 만큼 헌신적이었고 그의 아들 루포는 초대교회의 감독이 될 만큼 헌신적이었다. 표면적으로는 그가 우연히 예수님의 십자가와 마주쳤지만 실상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예수님이, 예수님 안에서 예정과 선택과 은혜가 그를 찾아와 완전히 그의 삶을 뒤바꾼 것이었다.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요1:35-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요1:39-40).

세례자 요한의 두 제자가 어느 날 예수님을 보게 됐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더러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선언하자 두 제자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갔다.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다. 두 제자는 예수님의 거처에까지 갔고 그 날 거기서 예수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두 제자 중의 하나는 안드레였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로 변신했을 뿐만 아니라 형 베드로도 예수님께로 이끌었다. 그는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을 가능하게 하는 단초를 제공했고 그의 형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을 사상 처음으로 공개했다. 표면적으로는 안드레가 우연히 예수님을 접하게 됐지만 실상은 예수님의 거처가, 예수님이, 예수님 안에서 예정과 선택과 은혜가 안드레를 덮쳐 완전히 안드레의 삶을 뒤바꾼 것이었다.

하나님의 선행적인 예정과 선택과 은혜 안에서 후행적으로 뿌리를 내리는 믿음은 불가항력이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4-6).

주님의 선천적인 예정과 선택과 은혜가 있었기에 우리의 후천적인 믿음과 헌신이 가능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엡1:11).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15:16).

하나님의 예정을 따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됐고 예수님의 선택을 따라 우리가 예수님의 일꾼이 됐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우리의 믿음조차도 주님의 은혜 덕분이었다는 것을 명심하자. 은혜 안에서 뿌리를 내리는 믿음이기에 우리의 믿음은 불변이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1-14).

예수님께서 사도 바울을 위해 먼저 붙잡아 두신 그것을 붙잡으려고 그는 달린다.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그를 위해 먼저 불러 주신 그 목표점의 상급을 받으려고 그는 달린다. 그가 힘껏 완주해서 그것을 붙잡은들, 그가 끝까지 완주해서 그 목표점의 상급을 받은들 주님께서 먼저 정해 두셨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물론 그의 완주도 중요하다. 사도 바울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다. 주님의 우리 각자를 향하신 예정과 선택과 은혜가 먼저 있고 우리 각자의 믿음의 완주가 뒤따른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갈1:15).

주님의 예정과 선택과 은혜가 선행적이고 사도 바울의 믿음과 헌신은 후행적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사도 바울은 그 어떤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했다. 그러나 그 믿음의 수고마저도 주님의 선행적 은혜 덕분에 가능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믿음의 수고가 크다면 먼저 주님의 은혜가 컸다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10:19-20).

하나님의 선행적인 예정과 선택과 은혜 덕분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이름이 하늘 생명책에 기록됐다. 그 어떤 기적이나 응답보다 이 사실을 가장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기도와 예배와 말씀, 그리고 헌신으로 주님께 나아간 것 같지만 사실은 주님의 예정과 선택과 은혜가 먼저 우리에게로 다가와 완전히 우리의 삶을 뒤바꾼 것이다. 주님의 예정과 선택과 은혜가 우리에게 처음 다가온 때를 기억하고 감사하자. 주님의 예정과 선택과 은혜에 따라 우리가 받은 직분을 기쁘게 감당하자.

'시온의 자녀들아, 야훼 너희 하느님께 감사하여 기뻐 뛰어라. 너희 하느님께서 가을비를 흠뻑 주시고 겨울비도 내려주시고 봄비도 전처럼 내려주시리니,'(공동번역 욜2:23).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신11:14).

농사 위에 비가 내려야 결실이 좋다. 인생 위에 은혜가 내려야 결과가 좋다. 주님의 예정과 선택을 인정하고 믿으라.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추구하라. 그리고 사도 바울처럼 완주할 때까지 믿음의 수고를 계속하라. 도전하고 실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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