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누리
 
 
1
1
  
ID/PW 찾기





접속통계


이전 글 다음 글 홈으로 돌아가기 리스트
210221 나는 복덩이 체질이다
cleven 171 2021-02-27 21:38:16
 
 

210221

나는 복덩이 체질이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마1:1-16).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나오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보아스...다윗...요셉은 결국 이기고 영원히 잘된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고 산 덕분이었다.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고 살면 내적인 중심이 생겨서 풍파에 덜 흔들리며 안 좋은 상황에서도 더 평정심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불안과 두려움에 떠밀려 초급하게 결정하거나 선택하지 않는다. 여건이 불리해도 자신감과 여유를 갖고 할 일을 하면서 도전해야 할 때는 도전한다.

'될람될'이라는 말이 있다. 될 사람은 여하튼 된다는 것이다. '될람될' 유형이라고 해서 일이 술술 풀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곤경에도 처하고 우여곡절도 겪는다. 그러나 스스로 '될람될'이라고 믿고 살기에 되는 방향으로 계속 움직이며 승률을 점점 높인다. 성경적으로 말하자면 약속의 말씀을 따라 계속 움직임으로써 그 말씀이 주는 동력을 지속적으로 얻고 그 말씀의 목표점에 결국 당도하는 승리자가 된다는 것이다.

'안될안'이라는 말도 있다. 안 될 사람은 어쨌거나 안 된다는 것이다. '안될안' 유형이라고 해서 일이 꼬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할 때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 '안될안'이라는 불안과 두려움을 갖고 키우기에 점점 실패율을 높인다. 성경적으로 말하자면 약속의 말씀을 붙잡다가 방치함으로써 그 말씀이 주는 동력을 공급받지 못하고 그 말씀의 목표점을 상실한 채 이리저리 휩쓸리게 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12:1-3). 아브라함이 듣고 붙잡고 믿고 산 말씀이다.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창26:23-24). 이삭이 듣고 붙잡고 믿고 산 말씀이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창28:13-14). 야곱이 듣고 붙잡고 믿고 산 말씀이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49:10). 유다가 듣고 붙잡고 믿고 산 말씀이다. 유다 가문의 후손이었던 보아스도 유다 가문에 관한 이 말씀을 듣고 붙잡고 믿고 살았을 것이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행13:22). 다윗은 이 말씀을 듣고 붙잡고 믿고 살았을 것이다.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0-21). 요셉은 이 말씀을 듣고 붙잡고 믿고 살았을 것이다.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개똥밭에 굴러도 참외를 따먹는 사람이 있다. A씨는 보이스피싱을 당해 3000만 원을 뜯기고는 경찰에 신고했다. 그런데 보이스피싱 범인이 그 돈으로 비트코인을 사서 세탁하려다가 코인거래소의 감시망에 걸렸다. A씨는 비트코인 상승분까지 합쳐서 6400만 원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될람될' 사례라기에는 너무 도박같이 우발적이다. '될람될' 유형은 스스로 '될람될'이라고 반복적으로 믿고 살기에 '될람될'이 점점 체질화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3:13-14).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복은 내 것이 된다. 아브라함의 복이 무엇인가.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12:1-3). 아브라함의 복은 자기 자신도 잘되고 남들도 잘되게 하는 이중복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런 이중복이 나에게 있다. 나는 '될람될'일뿐만 아니라 남들도 '될람될'이게 하는 복덩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미리 약속됐던 성령도 받았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그러니까 나는 하나님의 양자녀요, 하늘나라의 상속자다. 아브라함의 복뿐만 아니라 영생의 복, 천당 영주권의 복까지 받은 것이다. 이런 사실을 내가 확신하는데 어찌 '안될안' 인생이 되겠는가.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잘되고 남들도 잘되게 하는 복덩이인 것이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1-32). 내가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니 하나님은 자기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나에게 선물로 주셨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아브라함의 복, 영생의 복, 천당 영주권의 복을 다 받은 것이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오히려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벌 받을 일을 생각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증거입니다'(요일4:18).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나를 위해 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을 완전히 믿는다면 나는 어떤 두려움도 이기는 체질로 점점 바뀐다.

한두 번의 믿음으로는 '될람될'이 체질화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좋게 기록된 신앙인들처럼 나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계속 붙잡고 끝까지 믿어야 한다. 그러면 내적 확신이 생기고 중심이 잡혀서 세파에 덜 흔들리며 할 일을 하고 갈 길을 간다. 남들처럼 실패도 하고 곤경도 겪겠지만 결국에는 이기고 잘되는 상승곡선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신앙의 많은 영웅들이 성경에 기록돼 있는데 특별히 유다 지파의 이름과 다윗 가문의 이름이 최종적으로 이겼고 영원히 잘됐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음이더라'(왕하8:19).

'장로 한 사람이 '울지 마시오.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자손이 이겼으므로 그분이 일곱 군데의 봉한 것을 떼고 그 책을 펼 것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계5:5). 인류사, 세계사, 교회사에서 최종적인 승리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유다 지파의 사자이시고 다윗 가문의 자손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는 최종 승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속했고 유다 지파의 이름과 다윗 가문의 이름을 계승하는 반열에 서게 됐다. 나는 결국 이기고 영원히 잘되는 신앙인이다. '나는 결국 이기는구나. 나는 영원히 잘되는구나.' 이런 내적 확신의 뿌리가 완전히 내릴 때까지 약속의 말씀을 듣고 붙잡고 믿기를 반복해야 한다.

내가 잘되고 남들도 잘되게 하는 아브라함의 복, 유다 지파와 다윗 가문의 이름을 계승하는 복, 영생의 복, 천당 영주권의 복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게 있다는 약속의 말씀을 듣고 또 듣고 붙잡고 또 붙잡고 믿고 또 믿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기쁜 소식 곧 복음을 담담히, 당당히 전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1:16).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개신교 교회가 공공의 적이 되고 목회자의 위신이 땅바닥에 곤두박질칠지라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담담히, 당당히 복음을 전하자.

'예수님 믿고 죄로부터, 죽음으로부터 구원받읍시다. 예수님 믿고 저 천당에서 영원히 삽시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나도 잘되고 남들도 잘되게 하는 복덩이가 됩시다.'

 
- 451 -수정 삭제 답변


 

Copyright ⓒ dreamel, All rights reserved   Since 2003.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