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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03 역사의 맷돌에 갈린다
cleven 41 2021-10-02 22:35:15
 
 

211003

역사의 맷돌에 갈린다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포악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암6:3-7).

상아 상에 눕는다. 침상에서 기지개를 켠다. 어린 가축을 잡아먹는다. 악기를 갖고 노래한다. 포도주를 마시고 기름을 바른다. 그러면서도 남들이 죽든, 나라가 망하든 개의치 않는다. 일부 유한계급이 비정하게 사는 모습이다. 그러나 저런 사람들의 큰 집과 많은 재산은 원수의 손에 넘어갈 것이다.'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주 여호와가 당신을 두고 맹세하셨노라.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 성읍과 거기에 가득한 것을 원수에게 넘기리라 하셨느니라'(암6:8).

세상에는 감당 불능의 돈을 가진 사람들도 있고 감당 불능의 빚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돈이 넘치는 사람들은 무료한 나머지 짜릿한 재미를 찾고 빚이 넘치는 사람들은 죽지 못해서 산다. 돈을 주체할 수 없는 부자 몇몇이 빚을 주체할 수 없는 빚쟁이 456명을 대상으로 살상 게임을 벌인다. 곧 넷플릭스의 한국산 드라마 <오징어 게임> 이야기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 줄다리기, 구슬치기, 징검다리 건너기, 오징어 게임과 같은 한국산 재래식 놀이들이 차례로 진행된다.

단순한 서바이벌 게임이 아니다. 게임에서 진 참가자들은 즉시 죽임을 당한다. 놀이가 하나씩 마무리될수록 사망자 숫자는 늘어난다. 참가자 1명의 게임 값은 1억 원이다. 마지막 순서의 오징어 게임에서 두 명이 싸우다가 최후의 1명이 남는다. 최후 승자에게 456억 원의 포상금이 주어진다. 이 게임을 기획하고 즐긴 부자 몇몇은 짜릿한 재미를 만끽했고 이 게임을 진행한 도우미들은 사망자들의 장기를 팔아 잇속을 챙겼다. <오징어 게임>은 2021년 9월 17일 넷플릭스에 등장하자마자 세계를 강타했다.

잔혹한 살상 장면들이 연달아 던지는 자극과 긴장이 살벌하긴 하다. 그러나 세계인들의 뼈를 때린 것은 따로 있다. 빈부격차의 양극화 현실을 절절히 느끼게 만드는 실재감이다. 영화 <기생충> 따위와는 비교 불가일 정도다. 현실의 이쪽 극단은 돈더미에 앉아 누릴 재밋거리를 찾고 현실의 저쪽 극단은 빚더미에 눌려 죽을 핑계거리를 찾는다. 국회의원 아버지를 둔 아들은 6년 근무하고서 퇴직금 50억 원을 챙겼고 그런 아버지가 없는 아들은 고층빌딩을 닦다가 낙상사를 당했다.

지금의 양극화 현실을 10배 속도로 압착해서 돌리면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같아질 것이다. 우리의 극단적 양극화 현실은 느리고 느슨한 <오징어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요즘 청년들이 결혼하지 않으려고 하고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한다. 자식을 잘 기를 경제력도 없거니와 자식이 남의 하인처럼 살 것 같아서 두렵기도 한 것이다. 이런 사회 구조는 불변일 것 같고 난공불락일 것 같다. 그러나 반드시 바뀐다. 봉우리는 골짜기가 되고 골짜기는 봉우리가 된다. 단지 시간이 많이 걸릴 뿐이다.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사5:8-9). 99칸 대저택으로 주거지를 넓히고 만석지기 전답을 모아 자기들끼리 대대로 호의호식하고자 했겠지만 시대의 대전환과 사회의 대변동이 그냥 그대로 두지 않았다. 지금은 거의 다 흔적만 남아 있지 않은가.

요즘도 거부들은 대저택을 짓고 자기들끼리 홀로 거주한다. 저들의 일부는 남들이 죽든, 나라가 망하든 관심이 없다.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그가 강한 자에게 갑자기 패망이 이르게 하신즉 그 패망이 산성에 미치느니라'(암5:7-9). 자자손손 영원할 것 같지만 갑자기 패망이 들이닥친다.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시73:2-5). 횡단면의 단기간으로 보면 악인들이 형통한 것 같다. 그게 더 의인들을 미치게 만든다. 그러나 종단면의 장기간으로 보면 악인들은 반드시 패망한다. 역사의 맷돌에 갈아서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시73:16-20).

악인들의 악함뿐만 아니라 형통함에 의인들은 절망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인들을 멸시하시며 그들을 파멸로 이끄신다. 그들은 졸지에 전멸하게 될 것이다. 신앙인이라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됐는지, 또한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역사 속에서, 또한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방해하는 것들이 있으면 그것들을 밝히고 그것들과 싸워야 한다. 신앙인 스스로 싸울 것은 싸우고 하나님께 맡길 것은 맡겨야 한다. 몰역사성과 몰사회성은 기독교 영성이 아니다.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니 그들은 그 모든 형제를 통솔하는 자이며'(대상12:32). 메타버스와 NFT가 큰 흐름을 키우면서 새 일자리들을 쏟아내고 있다. 인터넷이 웹디자이너를, 빅데이터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SNS가 인플루언서들을 창출했듯이 메타버스와 NFT가 다양한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로블록스의 경우 130만 명에 달하는 아마추어 개발자들이 로블록스 스튜디오를 통해 5,500만 개의 게임을 만들어냈다.

제페토의 경우 50만 명의 아마추어 디자이너들이 제페토 스튜디오를 통해 1,500만 개의 아이템을 만들어냈다. 이렇듯 각 플랫폼이 자체적으로 제공하는 제작 도구를 통해 사용자들이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를 확장시키는 중이다. 메타버스 내부의 월드를 제작하는 빌더, 아바타 의상을 만드는 디자이너, 아바타 드라마를 총괄하는 PD 등은 이미 등장했다. 메타버스 내부의 랜드 중개업자, 투어 가이드, 이벤트 플래너 등도 속속 등장할 전망이다. 급속히 진화 중인 NFT는 전문 해설가들을 따로 두어야 할 정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 지금의 우리는 그 옛날에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도 해야 한다. 예수님의 일이 지리적으로 이스라엘에 국한됐다면 우리의 일은 전 지구적일 수 있다. 우리 앞에는 기후위기와 인공지능 확산에 따른 대형 난제들이 즐비하다. 누군가는 믿음과 용기를 갖고 덤벼들어 해결할 것이다.

대다수는 평생에, 또 대대로 성실하게 노력해서 돈을 벌었다. 3대에 걸쳐 계속 노동만 팔았다면 4대부터는 돈으로 돈을 버는 금융자산가가 나와야 한다. 금융자산가가 되면 모든 형태의 투자를 다 집행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그래서 더 적은 노동으로 더 많은 돈을 벌게 되고 더 창조적인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된다. 요즘은 20-30대도 조기 은퇴를 꿈꾸며 자산 형성에 골몰한다.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시라고(신8:18), 또한 좋은 협력자를 만나게 해 주시라고(잠27:17) 주님께 간구하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8:18). 축복의 말씀이든, 저주의 말씀이든, 선포의 말씀이든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졌다. 예수님의 이런 권능이 우리에게도 있다. 우리의 축복, 저주, 선포에 성취의 권능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축복, 저주, 선포로 천지를 매고 풀 수 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믿는 사람이 말에 이런저런 조건을 달지 말라는 것이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돌아가거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새번역 막7:29). 믿는 사람이 말을 할라치면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나에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현대인의성경 빌4:13). 믿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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