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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21 어떤 형편에도 감사할 이유
cleven 7 2021-11-21 00:57:08
 
 

211121

어떤 형편에서도 감사할 이유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해산할 때에 보니 쌍태라. 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색 실을 가져다가 그 손에 매었더니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의 아우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그의 형 곧 손에 홍색 실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의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창38:26-30).

베레스만큼 요상하게 태어난 경우가 있을까. 어머니는 분명히 어머니인데 아버지가 할아버지다.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자랐지 않을까. 10명의 아버지 형제들은 베레스를 어떻게 대했을까. 베레스의 출생으로 집안의 항렬이 뒤엉켰다. 자식 나이인데 항렬이 같은 베레스에 대해 사촌들은 어떤 반응이었을까. 같은 또래의 조카들은 베레스에게 아저씨 대접을 했을까. 집안 식구들은 우호적이었다고 쳐도 동네 사람들은 어땠을까. 출산 때 쌍둥이 동생을 밀치고 먼저 나온 것을 보면 씩씩하게 잘 자랐을 것 같긴 하다.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룻4:18-22).

사후의 베레스는 후손 다윗의 등장으로 그 이름을 떨치게 된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한 다윗은 베레스를 자기 족보의 중심에 올린다. 다윗 덕분에 베레스는 사후에 가문의 중심인물이 된 것이다.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고 하나님 안에 계속 머문다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하나님을 계속 믿는다면 베레스처럼 출생의 비밀이 있는 사람도 초년기 인생에 대해 감사할 수 있다.

"제삼일은 바로의 생일이라. 바로가 그의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그의 신하들 중에 머리를 들게 하니라.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창40:20-41:1).

베레스가 가장 난처했을 초년이었다면 요셉은 가장 난처했을 청년이었다. 요셉은 이복형들에게서 인신매매를 당했고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면서 무고하게 감옥에 갇혀 2년을 썩어야 했다. 그러나 파라오의 꿈을 해석함으로써 이집트 제국의 총리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50:20). 하나님을 계속 믿는다면 요셉처럼 인신매매를 당하고 무죄하게 투옥된 사람도 청년기 인생에 대해 감사할 수 있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출2:11-14).

모세는 파라오 왕실의 왕손으로 입양돼 자랐다. 장년의 모세는 거칠 것이 없었다. 그러나 히브리 동족의 핏줄이 당겨서 히브리 동족을 편들다가 애굽 사람 하나를 살해하고 말았다. 그 사실이 탄로됐고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다.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출2:15). 모세는 파라오의 왕손으로서 장차 파라오의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도망자 신세로 전락했다.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출3:1-4).

요셉이 가장 난처했을 청년이었다면 모세는 가장 난처했을 장년이었다. 모세의 장년기 40년은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처가살이를 하면서 장인의 양 떼를 쳤다. 양 똥을 치우는 등 반복적인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호렙산의 떨기나무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모세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모세의 장년기는 초라하게 한가했다. 그러나 그 한가함 속에서 하나님의 소명과 사명을 받은 것이었다. 하나님을 계속 믿는다면 모세처럼 무기력하게 초라한 사람도 장년기 인생에 대해 감사할 수 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계1:9-12).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그리고 승천하심 이후 기독교는 빠르게 확산 중이었다. 그 와중에 다른 제자들은 다 순교하고 사도 요한만 남았다. 다들 주님을 위해 순교의 영광을 안았지만 요한은 에게해의 작은 섬인 파트모스에서 유배 생활을 해야 했다. 아마도 채석장에서 돌을 캐며 고단한 나날을 보내던 중 부활의 주님을 다시 만났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계1:2). 요한에게는 유배지에서 본 것을 증언하는 사명이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계19:13-16).

모세가 가장 난처했을 장년이었다면 요한은 가장 난처했을 노년이었다. 다른 제자들이 다 순교의 제물로 떠났어도 요한은 남은 숙제를 풀어야 했다. 요한은 예수님을 종말의 심판주로 증언했다.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예수님은 종말에 천하만국을 치실 것이다. 요한이 유배지에서 본 것을 증언하지 않았다면 종말의 심판주이신 예수님에 대해 잘 알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을 계속 믿는다면 요한처럼 불행한 말년의 사람도 노년기 인생에 대해 감사할 수 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4-5). 창세 전에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하시고 인도하신다. 우리가 계속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늘 하나님의 완전한 섭리하심 가운데 있다. 그러니 가장 난처한 초년의 야베스도, 청년의 요셉도, 장년의 모세도, 노년의 요한도 자기 인생에 대해 감사할 수 있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공동번역 살전5:18). 하나님의 완전한 섭리하심을 믿는다면 어떤 처치에서든지 감사할 수 있다. 야베스 같은 초년기 고난도, 요셉 같은 청년기 고난도, 모세 같은 장년기 고난도, 요한 같은 노년기 고난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시켜서 좋게 만들어 주신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5:20). 어떤 처지에서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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