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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2 자뻑의 힘, 자학에서 탈출
cleven 151 2023-11-12 00:40:10
 
 

231112

'자뻑'의 힘, 자학에서 탈출
''오늘이나 내일쯤 아무 아무 도시로 가서 일 년 동안 거기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어보겠다' 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합니다. 당신들은 내일 당신들의 생명이 어떻게 될는지 알지 못합니다. 당신들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만일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우리는 살아가며 이런 일, 저런 일을 해보겠다' 하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공동번역 약4:13-15).

우리는 생물이다. 생물은 언제 안개처럼 사라질지 모른다. 건강해도, 젊어도, 부유해도, 지혜로워도 한순간 죽을 수 있다. 왕후장상이라도 죽으면 대략 사흘 안에 시신마저 사라진다. 확실히 지금이 선물이다. 하루하루 아까운 듯이 스스로 행복해야 하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 우리가 내일 죽는다면 우리의 중요한 사람들과 함께 오늘 행복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 뭐가 필요할까.

크고 작은 성취들이 다 하찮게 버릴 쓰레기 더미일 뿐이다. 죽음을 앞에 놓고서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는 중요한 사람들만 남는다. 너무 자주 죽음을 생각해 보면 삶의 동력을 잃겠지만 가끔씩 죽음을 생각해 보면 삶이 단순명쾌해진다. 우리는 생물이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내일 안개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 하루하루 스스로 행복하고 서로 사랑하자. 스스로, 또 중요한 사람들에게 예쁜 말, 고운 말을 하자.

도미노 패가 하나 쓰러지면 연쇄반응이 일어나 집채만한 도미노 건물을 순식간에 무너뜨린다. 미운 말, 거친 말에 우리의 마음도 도미노 현상을 일으킨다.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잠11:11). 개인뿐만 아니라 집안도, 도시도 말에 따라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 예쁜 말, 고운 말을 하자.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도 자주 하자.

'만일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우리는 살아가며 이런 일, 저런 일을 해보겠다.' 우리는 안개처럼 쉽게 사라질 수 있는 생물이다. 내일 죽을 수도 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니 하루하루 우리가 살아가고 이런저런 일도 한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시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덕분에 행복하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안에서 서로 사랑하자. 하나님께 예쁜 말, 고운 말을 하자. 죄송하다는 말, 감사하다는 말도 자주 드리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12:32-33). 10명의 가나안 정찰대는 가나안에 대해 과장되게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

과장되게 나쁜 소문은 공포심을 조장하며 심리적인 도미노 현상을 초래한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민14:1-2). 과장되게 나쁜 소문, 증폭되는 공포심, 폭발하는 막말 대잔치가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주어진 환경을 지나치게 나쁘게 평가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낮게 평가한다면 하나님 탓, 지도자 탓, 부모 탓이 나오게 돼 있다. 남 탓을 계속하다가 그것도 지치면 자신을 막다른 골목까지 몰아붙인다.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과장되게 나쁜 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한순간 와장창 무너졌다. 막말도 모자라 막장까지 치달은 것이다.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민13:3-4). 주어진 환경을 지나치게 비관한 나머지 아예 원점으로 되돌아가려고 한다. 그마저도 안 되겠다 싶으면 더 발악할 것이다. '하나님, 왜 세상을 만드셨나요.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

많은 사람들이 자책하기에 바쁘다. 자책에 지치면 자학도 한다. 자학하다가는 자폭까지 한다. 자폭은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도 죽인다. 자책, 자학, 자폭의 첫 출발은 말이다. 미운 말, 거친 말을 내뱉다 보면 막말도 하게 되고 자기 자신을 막장까지 몰아붙인다. 예쁜 말, 고운 말을 하면 자신에게도 좋고 남들에게도 좋다. 자신에게, 남들에게, 하나님께 예쁜 말, 고운 말을 하자.

긍정적인 말이 긍정적인 삶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자신에게, 남들에게 나쁜 기분이 들게 하지는 않는다. 미운 말, 거친 말은 불쾌한 감정을 주고 인간관계를 갉아먹는다. 그런 말을 하면서 표정까지 찡그린다면 설상가상이다. 남들의 말에 상처를 자주 입는 편이라면 자신의 허약한 내면이 문제다. 남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이라면 자신의 나쁜 말투를 바꾸어야 한다.

자책, 자학, 자폭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종종 '자뻑'할 수 있어야 한다. 자뻑이 자기 위로와 자기 격려의 힘을 주기 때문이다.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왕상19:13). 엘리야는 북쪽 갈멜산에서 대승을 거둔 후 왕비 이세벨의 추격을 피해 남쪽 브엘세바로 내려갔다가 40주야를 더 내려갔다.

시내 반도의 남단에 위치한 호렙산(시내산)의 동굴 입구에 서 있는 엘리야더러 하나님께서 물으신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엘리야가 대답한다.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왕상19:14).

엘리야는 자신의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 유별하고 오직 자신만 남았다고 변명한다.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오직 나만 남았거늘.' 엘리야의 변명에는 자뻑이 보인다.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왕상19:4).

저렇게 조상들 곧 모세보다 못하다며 죽겠다던 엘리야가 더 이상 아니다. 자뻑은 일종의 자신감이기도 하다. 자책이나 자학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자뻑 덕분이었을까. 모세가 소명을 받고 후일 십계명을 받았던 호렙산에서 이제 엘리야가 사명을 받는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왕상19:15).

엘리야는 모세의 산으로 불리던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최종 사명을 받음으로써 모세보다 못하다던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비교는 열등감을 갖게 하고 비참한 감정에 빠지게 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자뻑도 못할 것이다. 자뻑은 일종의 믿음이다. 지나치게 자주 자뻑한다면 미움을 받고 공격도 받을 것이다. 가끔 자뻑한다면 힘을 얻고 인정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19:18). 엘리야는 오직 자신만 남았다며 자뻑했지만 하나님은 경건한 신앙인 7,000명이 남아 있다며 엘리야의 자뻑 내용을 친절하게 교정시켜 주신다. 자학하는 사람은 하나님이시라도 어찌하실 수 없다. 그러나 자뻑은 일종의 믿음이라서 하나님을 움직이게 한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눅6:5-7). 빌립은 당당히 대답했다. 저렇게 잘난 척하는 대답 덕분에 오병이어 기적이 더 빛나지 않는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3-26). 마르다가 저렇게 잘난 척하며 대답한 덕분에 저 빛나는 말씀이 대대로 전해질 수 있지 않는가.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4-6). 다른 제자들이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때 도마가 당당히 여쭈였다. 저렇게 잘난 척하며 여쭌 덕분에 저 빛나는 말씀을 우리가 외칠 수 있지 않는가.

자책, 자학, 자폭의 악순환에 사로잡혀 있다면 하나님도 어떻게 하실 수 없다. 간혹 자뻑한다면 하나님은 자뻑에서 믿음을 보실 것이다. 엘리야는 조상들 곧 모세와 비교함으로써 열등감에 빠졌고, 다 내팽개치고 죽겠다며 자학했다. 그러나 호렙산에서 오직 자신뿐이라며 자뻑을 회복하자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최종 사명을 맡기신 것을 잊지 말자.

계속 자학하기보다 간혹 자뻑함으로써 자기 위로와 자기 격려의 힘을 얻자. 자뻑할 줄 아는 믿음으로 사명을 감당하자.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안에서 자존감 100%, 효능감 100%로 살자. 삭아 없어지는 인생이 아니라 불태워 없어지는 라이프 100%로 살자.

주일예배를 통해 영혼 건강을 추구하고 의료기들을 통해 육체 건강을 추구하고 그 영업을 통해서는 재정 건강을 추구하자. 나비헬스선교회의 전국적인 조직화를 통해 예수나비교회를 부흥시키자. 예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이끄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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